공성계(空城計)

김재두 기자 | kimjaedu@hanmail.net | 입력 2018-04-02 09:5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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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계(空城計)

 

[K스포츠장기= 김재두] 공성계(空城計) : 성(城)을 비우는 계책.

 

3국시대(三國時代) 위군(魏軍) 총수(總帥) 사마의(司馬懿)는 15만군을 이끌고 촉국(蜀國)의 서성(西城)을 공략하기 위해 진군하였다. 이때 서성은 제갈량(諸葛亮)이 5천 군사로써 수비하고 있었는데 2500명은 인근의 군사 기지를 수비하기 위해 나누어 떠났고 서성 안에는 불과 2500명뿐이었다. 제갈량은 위(魏)의 대군이 장차 성 밑까지 들이닥칠 것을 알고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성위의 깃발은 모두 거두어 숨겨두라. 큰소리를 지르거나 위치를 이탈하는 자는 참수(斬首)하리라. 그리고 4방의 성문은 활짝 열어놓고 20명씩 지키도록 하라.” 위군이 성을 향해 진군하는 것을 본 제갈량은 평상복을 입고 성루(城樓)에 올라 거문고를 타기 시작하였다. 사마의가 보니 성문은 열려있고 깃발도, 지키는 병사도 없이 제갈량이 미소를 머금은 채 여유롭게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었으므로 크게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사마의는 생각 끝에, 제갈량이 위군을 성안으로 유인한 뒤 공격하려 한다고 판단하고 철군(撤軍)을 명령하였다. 아들 사마소(司馬昭)가 말하기를 “아버님! 제갈량의 행위는 성이 비었기 때문인데 어찌 지나친 걱정을 하십니까?” 사마의 “제갈량은 근신(謹愼)한 사람이어서 3번 생각하고 한 번 행동한다.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무리한 모험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사대문을 열어놓은 것은 성안에 매복군이 있다는 증거이다.” 사마의는 결국 철군(撤軍)하였다. 제갈량에게 장령(將令)들이 기뻐하며 성공의 이유를 물으니 제갈량이 답하기를 “사마의는 나를 주밀(周密)하고 근신(謹愼)하여서 모험을 하지 않는 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속은 것이다.”

 

이를 두고 후세의 시인(詩人)들이 찬탄하기를 “3척 거문고가 강군(强軍)을 이겼다네(瑤琴三尺勝雄師).”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 때문에 오판(誤判)을 하니 결과는 어리석은 것이다. 관념의 색안경위에 또 다른 관념의 색안경을 겹겹이 쓴 현대인들은 제갈량에게 속은 사마의와 다를 바 없다. 생각으로써 사건을 해결하려는 당연한 논리의 허점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예가 공성계(空城計)이다. 사마의가 제갈량에 대한 사전지식(事前知識)없는 마음이 텅 빈 선사(禪師)라면 직관(直觀)의 힘으로 서성(西城)을 접수했을 것이다. 어느 현사(賢士)가 풀이하기를 “마음이 빈 자는 빈 마음을 사용하고 의심이 있으면 더욱 의심이 생긴다. 강함과 부드러움이 상관(相關)하는 경우에는 기이(奇異)하면 더욱 기이해진다(虛者虛之 疑中生疑。剛柔之際 奇而復奇。).” 강함과 부드러움의 상관은 《역경·해괘(易經·解卦)》에서 나온 말이다. “감하진상(坎下震上)” 의 격이니 위에는 우레, 아래는 비가 있어 우레와 비가 서로 상관하여 우주 안을 깨끗이 씻음으로써 만상(萬象)이 갱신한다는 뜻이다.

 

장기를 예로 들어보자. 실제 허점투성이 인데도 상대가 지레 겁을 먹고 물러가게 한다면 공성계라고 부를 만하다. 공성계는 한 두 번이나 사용할 수 있지 항상 사용하기는 어렵다. 실력 없이 상대를 속이는 경우는 얼마 안가서 실력이 드러나니 병법(兵法)의 정도(正道)가 될 수 없다. 아군이 강대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적군을 속여 적은 노력으로 승리를 얻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병법의 정도(正道)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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