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육지계(苦肉之計)

김재두 기자 | kimjaedu@hanmail.net | 입력 2018-04-30 09: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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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육지계(苦肉之計)

 

[K스포츠장기= 김재두] 고육지계(苦肉之計) : 자기 자신을 해친다.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오왕(吳王) 합려(闔閭)는 오왕(吳王) 료(僚)를 죽이고서 왕위를 빼앗았다. 그러자 료의 아들 경기(慶忌)는 위국(衛國)으로 달아나 그곳에서 군사력을 키우며 복수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를 안 합려는 경기의 복수가 두려워 매일 걱정만할 뿐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대신(大臣) 오자서(伍子胥)가 합려에게 말하기를 “소신이 지혜와 용기를 두루 갖춘 용사를 추천할 테니 그를 자객으로 쓰소서. 그의 이름은 요리(要離)입니다.” 다음날 합려가 요리를 만나보니 왜소하며 허약해보였다. 합려 “경기는 장건(壯健)하고 용력(勇力)이 출중한데 그대가 어찌 경기를 죽일 수 있는가?” 요리 “경기를 죽이는 데는 지혜가 필요할 뿐 힘은 필요 없습니다.” 합려 “그는 방비를 삼엄하게 하는데 어떻게 그에게 접근할 수 있겠는가?” 요리 “대왕께서는 저의 팔을 자르시고 저의 처자를 죽이시면 됩니다.”

 

이때 오국 내에는 합려에 대한 악소문이 돌고 있었는데 전왕(前王)을 시해(弑害)하고 탈위(奪位)한 혼군(昏君)이라는 내용이었다. 며칠 후 합려는 요리와 그의 처자를 체포하여 소문을 낸 범인이라는 죄명을 씌워 오른 팔을 자른 후 가족과 함께 하옥하였다. 그 뒤 오자서는 요리를 남모르게 탈옥시켰고 그의 처자는 처형하였다. 요리는 경기를 찾아가 합려에게 복수하기 위해 부하되기를 청한다고 말하였다. 경기는 요리의 사연이 사실인 것을 확인한 뒤 요리를 부하로 삼았다. 그 뒤 요리는 경기에게 충성하여 신임을 얻어 측근 무사가 되었다. 경기가 선단(船團)을 이끌고 오국 정벌을 하는 날도 요리는 평소처럼 그의 곁을 호위하고 있었다. 배가 바다 한가운데 이르렀을 때 갑판위에는 마침 아무도 없었고 이때 경기가 등을 돌리자 요리가 창으로 경기의 등을 찌르니 경기는 쓰러져 죽었고 요리도 자결하였다.

 

충성 때문에 처자를 죽게 한 자책감이라고 판단되니 보상을 바라지 않고 충성한 요리의 순수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긍하지 못하는 가슴안의 울림도 느껴진다.

 

어느 현사(賢士)가 풀이하기를 “사람은 자기 자신을 해치지 않으니 해를 입으면 반드시 타인 때문이라고 믿는다. 정황(情況)에 따라 거짓으로 참을 만들고 참으로써 거짓을 만든다. 타인의 어리석음은 나에게 길(吉)하니 굽힘으로써 타인을 이긴다.(人不自害 害受必眞 假眞眞假 間以得行。重蒙之吉 順以巽也。)”

 

《한비자·설난(韓非子·說難)》에 이르기를 “고육계(苦肉計)라 함은 대개 자기가 거짓으로 첩자가 되어 적을 속이는 것이다. 무릇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언동을 하여 적을 속이고 그가 응하면 그를 따르는 체 한다. 이러한 것들이 고육계의 종류이다. 예를 들면 정국(鄭國)의 무공(武公)이 호국(胡國)을 정벌하기 전에 자기 딸을 호왕(胡王)에게 바쳐 안심시켰고 최후에는 딸과 함께 호왕 관기사(關其思)를 죽인 방법이다.(苦肉計者 盖假作自間以間人也。凡道與己有隙者以誘敵人 約以響應 或約爲共力者 皆苦肉計之類也。如鄭武公伐胡 而先以女委胡君 並戮關其思。)”

 

장기의 예를 들어보자. 초보적인 고육계는 상대의 수에 걸렸을 때 최소한의 희생을 내면서 모면(謀免)하는 것이다. 다음은 승리하거나 큰 기물을 잡기위해서 부득이 희생양을 바치며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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