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판에서 읽는 법문 한 소식 (2)

최태환 기자 | sib8ki2@naver.com | 입력 2018-04-17 09:5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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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음(一心)과 한 수(一數) 

 

[K스포츠장기= 통융] 장기 한 판은 한 수에 생사가 결정 난다. 패착인 한 수, 신의 한 수로 승패를 나눈다.

우주는 하나이듯 한(一)은 무한한 뜻을 닮고 있는 공간(間)적 개념이라면 수(數)는 그 한을 펼치는 찰나의 작용인 시간(時)의 개념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수는 한 수 밖에 없다. 하나가 전체를 지배한다.

전체를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 한 수의 중요함은 한 판 장기에서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통융 스님

 

우리의 삶도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매 순간 순간 한 찰나 간에 한 판의 승부다.

생사(生死) 문제도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달려 있듯이 숨 한 번 내쉬었다가 들어 마시지 못하거나 들어 마셨다가 내쉬지 못하면 바로 그것이 내생(來生)인 것이고 죽음인 것이다.

 

결국 한 찰나가 우리에 삶의 전부라는 말이 된다. 이 한 수를 낳게 하는 생각이나 행동이 한 마음(一心) 작용에서 시작된다. 불교에서는 일체유심조(一體唯心造)라는 말로 쓴다. 모든 일은 한 마음에 달렸고 그 한 마음을 알아차림 하는 순간이 참 깨달음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 마음을 직관하는 순간을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세간은 순간(時間)의 연속성 속에서 끄달려 사는 것이고 출세간은 시간에 끄달리지 않으면서 사는 것 즉 시간의 윤회(輪廻)로부터 벗어난 중도의 경지라 한다. 하지만 세간과 출세간은 한 마음 안에 있기 때문에 둘이 아닌 한 수의 문제다.

그 한 수는 연기실상의 깨달음으로 생사를 넘나드는 찰나이다.

 

인도의 명상가인 오쇼 라즈니쉬는 이 순간을 ‘모든 행위의 전부가 되라’고 했다.

노자는 이 순간을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진정한 도는 절대 불변의 고정된 것이 아니다.’라고 찰나의 생멸로 설명하지만 결국 한 마음 떠나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참선하는 수행자가 은산철벽(銀山鐵壁)을 마주보고 앉아 철벽을 뚫기 위해 골똘하다 한 찰나에 화두를 타파하고 한 소식을 하듯, 장기를 두는 기사가 백척간두 진일보 (百尺竿頭 進一步)의 심정으로 마지막 한 수로 결정짓는 순간도 화두타파의 소식과 전혀 다를 바가 아닐 것이다.

백척 높이의 대나무 장대 끝에 서서 한 걸음 더 내딛는 절대절명의 순간을 맞닥뜨려 물러설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을 만났을 때, 결국 그 한 걸음 즉 한 수가 모든 상황의 희비를 결정짓고 새로운 국면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한 한 수를 만들어내는 지혜는 결국 지금 내가 깨어있는 자신을 자각(自覺)해야만 안다.

하나의 일체성인 연기법(緣起法) 즉 모든 것은 독립된 존재가 있을 수 없고 서로 서로 조건된 인연으로 일어남을 이해하고 승패의 집착과 청홍의 분별없이 양변을 함께 어우르는 중도(中道)의 진리를 바로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즉 자신의 알음알이에서 벗어난 실지실견(悉知悉見)인 바로 보고 바로 아는 혜안(慧眼)이 열려야 할 것이다.

 

원각도량하처 현금생사즉시(圓覺道場何處 現今生死卽是)

‘행복이 어디 있느냐 하면 지금 생사가 있는 이곳이 바로 그곳이다.’는 말인데 팔만대장경이 있는 해인사 법보전 주련(株聯=기둥)에 쓰여 있는 글귀다. 근대 선사인 보담선사(寶潭禪師)의 오도송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의 삶이나 한 판의 장기 속에서 행복할 수 있는 것은 한 수에 있다는 말이다.

지금 내가 깨어 있는 순간 순간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차림 하는 한 마음 챙길 때

기적 같은 신의 한 수가 되는 것이다…….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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