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문착적(關門捉賊)

김재두 기자 | kimjaedu@hanmail.net | 입력 2018-01-12 11: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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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문착적(關門捉賊)


[K스포츠장기= 김재두] 관문착적(關門捉賊) : 문을 걸어 잠그고서 도적을 잡는다.

 

약한 상대를 공격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사방에서 적을 포위하여 탈출하지 못하게 한 후 전멸(全滅)시키는 계책이다. 독안에 든 쥐를 잡아 죽이는 식이다. 그러나 정반대의 전략도 있으니 속담에 “도적을 쫓아낼 때는 달아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아라.” 도 있다. 이는 자기보다 조금 힘이 약하거나 비슷한 경우의 도적을 말한다. 적은 퇴로가 차단되면 결사적으로 싸울 것이고 그러면 아군의 손실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상대에게 달아날 길을 열어놓고 공격하는 수법은 상대의 체면은 살리면서 실리를 얻는 계략으로, 현대의 정치협정、노사협약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진국(秦國)과 조국(趙國)은 장평(長平)에서 전투를 벌렸다. 장평의 수장(守將)은 조국 장수 염파(廉頗)로서 그는 백전노장(百戰老將)이었다. 염파가 철저한 수비로써 강성한 진군과 대치하니 3개월이 넘도록 장평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진왕(秦王)이 전투 보고를 듣고 범웅(范雄)에게 승리의 계책을 물었다. 답하기를 “조왕이 염파를 파직한 후 무능한 장수를 후임으로 임명케 한 후 아군은 백기(白起)에게 지휘를 맡기십시오.” 진왕은 범웅의 계책을 따라 공작금으로 범웅에게 2만 냥을 하사하였다. 범웅이 출궁하여 수하(手下)들을 불러 돈을 나누어주며 조국의 대신들을 찾아가 염파를 비방하고 조괄(趙括)을 찬양케 하였다. 범웅의 계략은 적중하여 조국 대신들이 조왕에게 염파는 비겁하니 파직하라고 주청하니 조왕은 결국 염파를 파직시키고 조괄(趙括)을 후임으로 임명하였다. 조괄은 20만 군을 이끌고 장평으로 가서 주둔군 20만 군과 합하여 총 40만 군을 이끌고 진군과 전투에 임했다. 진군 대장 백기는 20만 군씩 나누어 좌우에 매복시키고서 부하 장수 왕흘에게 명령하여 조괄과 전투하여 거짓 패한 척하여 유인케 하였다. 조괄은 수만 군을 인솔하고 선봉에서 진군 장수 왕흘과 전투를 하게 되었는데 왕흘이 패한 척 달아나자 그를 쫓아 진격하였다. 왕흘은 진군 본영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 반격하였고 이때 사방에서 진군이 공격하니 조괄은 그제야 계략에 빠졌음을 알고 퇴각하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 어쩔 수가 없었다. 조괄은 조국 본영에 구원군을 청하려고 했으나 중도에 진군이 길을 막고 있어 이 또한 실패하여 46일 동안 포위된 채 탈출 시도만 하다가 패하여 죽었다. 그리고 남아있던 조국 본영의 군사들도 진군에게 대패하여 궤멸되었다.

 

어느 현자(賢者)가 “관문착적(關門捉賊)”을 풀이하기를 “약소한 적은 곤란하게 해야 한다. 이는 박(剝)이니 쉽게 달아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小敵困之。剝 不利有攸往)” “박(剝)“은 본시 《역경·박괘(易經·剝卦)》에서 나온 말이다. “곤하간상(坤下艮上)” 이니 땅이 아래에 있고 그 위에 산이 있으니 끝없이 광활한 대지가 산을 삼켜 없앤다는 뜻이다. 즉 “락(落)”, 떨어진다는 뜻이다.

 

《손자병법(孫子兵法)》에서도 아군이 10배 정도 수가 많으면 적을 포위하여야 한다고 하였고 아군이 적군의 1/10도 못되면 승산이 거의 없다고 하였다.

 

장기도 그러하니, 나의 기물은 많고 상대의 기물은 현저하게 적은 경우는 계략으로 이기려하지 말고 상쇄(相殺)시키는 것이 쉬우면서도 최상의 방법이다. 내가 계략을 쓰려다가 오히려 역이용 당할 수도 있으니 기물 점수를 손해 보면서까지 상쇄하여 상대는 뛰거나 이길 기물을 없게 하고 나는 최소한의 기물을 이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비록 관전자(觀戰者)의 눈을 즐겁게 하지는 못하나 꼭 이겨야 할 중요 대국이라면 반드시 실행해야 할 계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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